겹쳐진 손의 온기 (유마치카) [월드 트리거]
겹쳐진 손의 온기.
-쿠가 유마×아마토리 치카
-원작과는 관계없는 2차 창작물입니다.
By. 선풍기
언제부터였을까. 네가 내미는 손을 스스럼 없이 잡게 된 것은.
그 손을 잡는 걸 망설이게 된 것은 또,
언제부터였더라.
“치카.”
“아... 오사무군. 그리고...”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치카가 생긋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유마 군도...?”
그녀는 오사무와 그 옆에 서있는 흑발의 남성을 올려다보았다.
“오사무는 진 상에게 볼일이 있어서 그쪽으로 가는 중. 나는 개인 훈련. 치카는?”
두 손을 머리 뒤로 겹쳐 올리며 굵직한 목소리의 흑발의 남성이 말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웃음이 담긴 붉은 눈. 그녀는 그 눈을 몇 초가량 응시하다 슬 시선을 돌렸다.
“으..응. 요타로 군이 개인 훈련실이 어디인지 물어봐서, 길을 알려주려다가 여기 밀크셰이크가 맛있다고 하니까 한번 먹어봐야겠다면서 사러 갔어. 나는 그거 기다리는 중이야.”
“에? 요타로는 엊그제 입단해서 아직 C급 대원이잖아. 벌써 개인 훈련을 하겠다고?”
“응. 완전 의욕에 넘쳐있었어.”
“뭐, 의욕이 있는 건 좋지.”
유마가 푸흐흐 웃으며 말하는 걸 치카가 가만히 지켜보았다. 자신과 같은 눈높이에 있던 그가 이제는 고개를 위로 올려야 눈을 마주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어떤 의미론 안심이지만, 어떤 의미에선 조금...
“응? 내 얼굴에 뭔가 묻었어? 치카?”
슬펐다.
“에..엣.. 아...아니야아... 아니야! 미..미안...”
갑작스레 허리를 숙여 자신의 얼굴 가까이 그가 다가오자 그녀가 말을 더듬었다. 붉은,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눈에 그만 들킬 것 같아서 그녀는 얼른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
살짝 볼을 붉힌 채 눈을 요리조리 굴리는 그녀를 빤히 보던 유마는 다시 일어나 저 멀리 시선을 두었다.
‘유마군... 혹시 기분이 상한 건가?’?’
치카가 힐끗, 살짝 고개를 들어 곁눈질로 그를 보자 그는 싱긋 웃으면서, 누군가를 보곤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밀크 셰이크를 들고 뛰어오는 요타로가 보였다.
“미안, 치카. 어? 오사무랑 유마도 있었네.”
“요! 요타로~ 너, 아직 C급이면서 바로 개인 훈련하려고 했다며~”
요타로에게 어깨동무를 하곤 그의 머리를 큰 손으로 헝클이며 유마가 장난스레 말했다.
“나는 타마코 마의 대원이다! 타마 코마는 강해. 나는 아직 C급이지만 랭크전에서 얼른 점수를 따서 금방 A급이 되어 주겠어.”
“오오~ 좋은 기세잖아! 그렇다면 나하고도 한판 어때?”
“그건 무리.”
“에에-? 방금 얼른 점수를 따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어? 나한테서 이기면 점수는 파바박 올라갈 거라고~?”
능청스레 말을 늘리는 유마에게 요타로가 눈을 반짝이곤 진지하게 태도를 가다듬어 말했다.
“나는... 같은 타마 코마하곤 싸우지 않아.”
“오- 역시 타마코마 지부의 선배. 그럼 나랑 같이 랭크 전하는 사람 중에서 한 명 너에게 소개해주마.”.”
“쿠가, 너랑 랭크전 할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전부 A급이나 B급 상위잖아. 아무래도 역시 그건 요타로에게 너무...”
오사무의 말을 요타로가 한 손을 들어 저지했다. 그러곤 씩 웃으며 유마를 바라보곤 말했다.
“그 사람들, 강한 건가?”
요타로의 눈빛을 본 유마도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야. 코나미 선배 정도 되는 사람이 우글우글하다고?”
“그렇다면 좋다. 상대로서 부족함이 없군.”
“괜찮은 걸까나...”
팔짱을 끼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콧김을 내뱉는 요타로를 보는 오사무의 눈에 걱정이 가득 찼다.
“후후. 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오사무군도오사무 군도, 유마군도, 지금까지 자신보다 훨씬 강했던 사람들과 싸워 와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여기까지...”
오사무는 그녀의 말에 요타로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고 있는 유마를 바라보았다.
쿠가 유마는 옛날과는 다르게 키가 훌쩍 커졌다. 이렇게 말하면 평범하고 당연한 것 같지만, 상황을 아는 사람에겐 이 사실은 기적이었다.
“그러네.”
오사무는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그래. 말 그대로 일어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던 일. 블랙 트리거에 갇혀 있던 그의 원래의 몸을 되돌려내는 것. 작지만 정신은 이미 훌쩍 커버린 그와 함께 A급이 돼서, 원정에서 그의 몸을 되돌리는 기술을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오사무는 불안해하며 고심했다.
「그가 원래의 몸을 가진 채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은 0.00000023%밖에 불과합니다. 이 이상의 확률을 올릴 트리온의 양을 그리 쉽게 얻을 수도 없고...」
기적이란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았기에. 그는 전투로 인해 여기저기 금이 간 쿠가의 몸 사이로 피 대신 검은 기체가 새어 나오는 것을 이를 악물고 지켜봤다. 자신은 너무나도 무력했다. 대장으로서도, 그의 친구로서도. 이대로라면 트리온 채로 돼있는 쿠가의 몸도 사라질지 모른다고 하는데, 자신은 도대체...
「믿자. 오사무군.」
고요하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그를 깨웠다. 자신의 손을 맡 잡은 작은 손이 살짝 떨렸다가, 이내 멎어 들었다.. 그리곤 강하게, 자신의 손을 쥐고는 떨어졌다.
「제 트리온을 더해진다면 확률은 올라가나요?」
「그.. 그야..」
「그렇다면 제 트리온을 사용해 주세요!」
「하... 하지만..」
「부탁드립니다.」
허리를 숙여 부탁하는 자신의 소꿉친구의 옆모습은 단호했다. 마치 쿠가가 죽을 리가 없다는 듯이. 무엇이 그녀를 저리 강하게 만든 것일까. 그는 옛날의 그녀의 우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곤 그녀의 눈빛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아. 그런가.
「제 쪽에서도 부탁드립니다. 쿠가를... 저희 동료를 꼭 살려 주십시오.」
부탁이야. 쿠가. 네가 일어나지 않으면... 치카는 또...
그의 주먹 쥔 손이 떨리는 걸 본 치카의 눈에 울음이 서렸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입술을 꾹 다물었다. 우는 건, 아직 안되니까. 이 눈물은 그가 일어날 때까지 아껴놔야 하니까.
그리고 기적은 일어났다. 유마의 새 삶과 바꾼 것은 치카의 트리온 양 정도밖에 없었다. 원래부터 적은 트리온 양을 가진 자신은 그때도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었다. 지금 치카가 보통 C급 대원들보다 못한 트리온 양을 가지게 되어 오퍼레이터로 전직한 것도 어떻게 보면 자신의 탓이다.
그러니 자신은...
“그렇다면 빨리 개인 훈련하러 가자고!! 치카도 같이 어때?”
“에? 하지만 나는...”
유마의 물음에 치카가 슬쩍 고갤 돌리며 우물쭈물거렸다..
“그러고 보니까, 치카. 나츠메 상이 너를 찾고 있는 것 같았어.”
“에? 어디서?”
갑작스레 오사무가 치카에게 말하자, 치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 물었다.
“음... 아마 개인 훈련실 근처에서라고 생각하는데.”
“그래?”
“그러면 딱 좋지 않은가. 치카, 유마랑 나랑 개인 훈련실로 가면서 친구를 찾으면 돼.”
“으.. 응.
요타로의 말에 치카가 양손을 꼼지락 거리다가 살짝 미소 지었다.
“그러면 결정이네. 오사무 이따가 밤에 방위 훈련에서 봐. 가자, 치카.”
“응.”
자신은 최대한 그들의 행복을 위해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이다.
“잘 다녀와.”
자신의 친구를 위해서도, 첫사랑을 위해서도.
덜커덕.
자판기에서 캔이 나오자 유마는 그걸 꺼내 들어 옆의 치카에게 내밀었다.
“자, 치카 꺼.”
“아, 고마워.”
그의 손에서 치카가 캔을 받아냈다. 살짝, 손끝이 서로 닿자 그녀의 어깨가 약간 흠칫거렸다. 그것을 힐끗 쳐다본 유마가 다시 허리를 굽혀 자판기에서 음료수 캔을 하나 더 꺼냈다.
치익-
음료수 캔을 따는 소리, 꿀꺽꿀꺽 그가 목울대로 음료를 넘기는 소리가 사람들의 대화 소리에 섞였다. 치카는 입술을 우물거리며 유마의 옆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다 그가 시선을 눈치채고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자, 깜짝 놀라며 얼른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는 살짝 붉어진 그녀의 뺨을 가만히 보다가 다시 음료수 캔을 입에 갖다 댔다.
사람들의 소란스러움 속에 둘만이 아슬아슬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치카는 다시 그의 옆얼굴을 보았다. 조금 날카로워진 턱선, 불룩 튀어나온 목젖, 넓어진 어깨... 검 해진 머리칼과 더불어 그의 몸은 많은 것이 변했다.
‘사람의 몸으로 돌아와서... 그동안의 몸의 성장도 같이 받게 된 거였지.’
그가 살아 돌아왔을 때, 치카는 드디어 울 수 있게 되었다. 기쁨의 눈물을,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그의 품에 안겨 얼마나 많이 펑펑 쏟아내었는지. ‘울만큼 기뻤다’라는 건 자신뿐만은 아니었지만. 오사무도, 선배님들도, 유마를 아는 사람들 모두가 그가 살아 돌아왔음에 기뻐했고, 감사했다. 그런데 자신은 어째선지 유마가 돌아온 그날 이후부터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게 되었다. 방금 전에 그에게서 음료수 캔을 건네받을 때도, 손가락 끝이 서로 닿은 그 순간 뭔가 가슴 안쪽에서 뜨거워지고, 고동이 점점 빨라지는 게 느껴져서...
‘나... 도대체 어떻게 돼버린 걸까....’
치카는 다시 열이 오르는 자신의 뺨을 차가운 음료수 캔으로 식혔다. 그가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조금 커진 몸밖에 없는데. 자신을 대하는 말도, 행동도 여전히 상냥했다. 그런데 자신은 그를 피하기만 하고 이렇게 둘만 있게 되면 침묵으로 상황을 어색하게 만들어버린다.
‘오사무 군과 세 명이면 이렇게까지 조용하진 않은데 말이야...’
그녀는 조심스레 시선을 옮겨, 음료수 캔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왜... 제대로 말할 수 없을까.’
고맙다고, 살아 돌아와 줘서, 또 이렇게 서로 얼굴을 마주 볼 수 있게 된 것에 고맙다고. 그가 살아 돌아온다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말하려고 했었는데. 막상 살아 돌아온 그를 보고 나온 말은 알아들을 수 없는 울음이었으며 그걸 본 그는 예전처럼 웃으면서 자신과 오사무를 꽉 끌어안아 주었었다.
‘고마워.’
라고 몇 번을 속삭이면서, 훌쩍거리는 우리의 등을 가만히 토닥여 주는 그의 손은 예전과 같은 온기였지만, 한층 더 커져 있었다.
삑!
화면에서 승부가 결정 나는 소리가 나자 그녀가 우물거리던 입을 열어 침묵을 깨었다.
“요타로 군은... 잘하고 있을까나...”
“글쌔.
“뭔가 미안해. 치카.”
“응?”
유마의 생뚱맞은 말에 그녀는 고개를 들어 크게 뜬 보랏빛 눈을 그의 붉은 눈과 마주쳤다.
“드디어 이쪽을 봐주는구나.”
“아... 그...”
그가 부드럽게 미소를 짓자 그녀는 쿵 내려앉는 심장의 무게만큼 꽉 캔을 집으며 다시 얼굴을 아래로 돌려 발그레진 두 뺨을 숨겼다.
‘자꾸만 왜 이러지.. 나...’
힐끔힐끔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그의 시선을 살피면서도 막상 그와 눈을 마주치면 도망가고 만다. 자신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두려워? 이 빠른 심장 고동의 이유가 두려움인 걸까??
‘아니.. 조금.....’
다른 것 같아. 그녀는 가만히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두근. 두근. 평소와는 조금 다른 이 울림이 ‘기쁜’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는 건,
“치카.”
자신의 착각인 걸까..
“이쪽을 봐줘.”
예전과는 다른, 낮은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아무리 고개를 숙여도 자신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 얼굴이 다 보일만한 거리에 그가 있었다.
“저.. 저기....”
서로의 숨결이 섞일만한 거리. 자칫 잘못하면 이 두려움의 이유마저 너의 눈에 비칠 것 같아서,
“너무.. 가까워.”
나는 피하고 말아.
“아, 미안.”
진땀을 흘리며 어색한 웃는 얼굴을 하는 치카를 보곤 유마가 그녀에게서 몸을 떨어트렸다. 삑. 다시 승부가 나는 소리가 나자 그가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음료수를 꿀꺽꿀꺽 전부 마시고는 빈 캔을 좀 떨어진 쓰레기통에 던졌다. 시원스레 들어가는 캔을 보며 치카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유마 군이 가까이 있으면 어째선지 자꾸 긴장돼서..’..’
하지만 조금 아쉬운 것 같기도...
어라?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다른 소리에 깜짝 놀란 치카가 좌우로 고개를 홱홱 저을 때 주변의 소음 속에서 또렷이, 유마의 나긋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어왔다.
“원래대로 돌아오고 나서부터 나, 치카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에?”
도대체 오늘 몇 번이나 그에게 놀라고 마는 건지. 하지만 그 말을 하는 그의 옆모습이 순간 애처로울 만큼 쓸쓸해 보여서
“그렇지 않아!”
그에게 닿고 싶다고 생각하고 만다.
바짝 그에게 몸을 붙이곤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그녀의 눈은 진지했다. 언젠가 그를 살려달라고 허리를 깊게 숙이던 날과 같이. 그는 놀랐다. 그것도 꽤 많이. 거짓을 간파할 수 있는 그에게 있어서 놀라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의외의 상대에게 이렇게나 올곧은 진심을 받아버렸기 때문일까.
아니, 그녀는 항상 올곧은 사람이었지. 숨기고 싶은 상처가 많을 뿐.
그녀의 그런 상처를 아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나는 가끔은 그런 사실에 오만을 느끼고 말아, 치카. 그러니까 계속 묶어두지 않으면.
그녀가 내게 과거를 털어놔 준건 이 눈은 봐버리니까.
의지해주는 이유는 내가 같은 팀 메이트이기 때문에.
이렇게 너를 향한 마음을 꼭꼭 묶어놓으면 네 옆에 웃으며 서있을 수 있으니까.
그걸로 충분했다.
그렇다면 요즘 자꾸 나를 피하는 이유는?
살짝 커졌던 그의 눈이 장난스레 반쯤 접혔다..
“치카, 너무.. 가깝지 않아?”
“어..?”
톡, 코끝이 서로 닿자 치카는 몸이 딱딱하게 굳는 걸 느꼈다. 마치 물이 0도를 만나 순간적으로 얼어버리는 것처럼. 그런데도 심장으로부터 끓어오르는 열기는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 버려서, 무서워.
“미.. 미안해!”
입만 겨우 달싹거려 그녀가 말하자 그가 부드럽게 입가에 호선을 그으며 몸을 뒤로 움직였다.
“아니, 괜찮아.”
“그.. 래?”
“응.”
그런 반응을 보이면 착각하고 말아.
네가 자꾸 나를 피하는 이유가...
“오히려, 나는 다행이라 생각했어.”
나와 같을 거라고,
“치카가 나와 있는 게 불편하지 않다고 말해줘서.”
기대하고 싶어 져..
그의 머릿결처럼, 포근한 미소. 요즘은 한 발짝 떨어져서 밖에 못 봤던 얼굴이었다.
아, 유마 군의 이 얼굴.. 나 다시 볼 수 있게 된 거구나.
그렇구나. 나...
“치카?”
“유마 군.. 미안해.”
“뭐가? 그보다 지금 우는 거야?”
조심스레 그가 그녀의 눈가를 손가락으로 스치자 치카가 살며시 유마의 손을 맞잡았다.
‘따뜻해...’
그래. 나는 이 따뜻함에 닿는 게 무서운 거였구나. 닿으면 이제 다시는 놓지 않게 될까 봐,, 그런 욕심으로 널 붙잡게 될까 봐..
“슬픈 거야?”
“으으응. 아니야.”
그에게는 들켜버릴 거라는 걸 알면서 치카는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완전히 거짓은 아니니까. 슬프기도 하지만 동시에 벅차올라. 이것이 기쁨인지 죄인지는 모른 채.
“고마워. 유마 군.”
나는 네 손의 온기를 잡고 말아. 지금만이라도... 이 순간만이라도...
“고마워해야 할 건 이쪽이야.”
그가 다른 손으로 그녀의 반대쪽 빰을 감쌌다. 한번 그녀의 뺨을 적신 눈물이 그대로 그의 손등 위로 흘러내렸다.
“계속 말하고 싶었어. 예전부터 지금까지, 내가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치카, 네 덕분이야. 고마워.”
“유마 군...”
코끝이 찡해지는 감각을 꾹 참고 그녀는 웃었다. 자신의 뺨을 감싸고 있는 그 손에 다른 손을 또 겹치곤 눈을 감았다. 이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
‘좋아해. 유마 군.’
그렇게 말하고 싶을 때마다 이 온기를 떠올리기 위해서.
“그래서? 제대로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반으로 가른 밤비 위에 서 있는 유마에게 다가가며 진이 묻자 유마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진 상은 미래뿐만 아니라 과거도 볼 수 있었나?”
“아니. 엘리트의 감이야.”
“그래.”
진이 승-- 쌀 과자 봉지를 유마에게 내밀자 그가 웃으며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와사삭- 바사삭, 먹음직스러운 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을 바라보자 수많은 네이버 후드들이 빛나고 있었다.
“네가 여기 남아줘서 다행이야.”
“뭘 새삼스럽게. 진 상에게는 전부 보였잖아?”
“그야 보였긴 보였지만 말이야, 그렇게 놀랍도록 명확한 미래는 오랜만이었으니까. 네가 원래의 몸을 되찾아서 살아 돌아온다는 미래는 무척이나 엷었는데, 살아 돌아온 네가 떠난다는 미래는 없었어.”
“헤에..”
“별로 놀라워하는 것 같지 않네.”
쿠가 유마의 소멸 직전에서부터 다시 소생한 지금까지, 진에게는 수많은 갈림길이 보였었다. 치카의 트리온을 사용해 쿠가를 소생시키는 큰 수술을 할 때, 그도 곁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후배들은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떤 미래가 있는지, 아주 희박한 길이라도 쿠가 유마가 살아날 미래도 있는 건지조차.
「믿기로 했으니까요. 저도, 치카도.」
흔들림 없던 오사무의 눈을 기억한다. 뭐, 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감탄하게 돼버린다니까. 큰 기계와 수많은 선들에 둘러싸인 유마를 보면서 그는 아마 이렇게 덧붙이고 싶었을 것이다.
쿠가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쿠가 유마를 살리는 방법은 그의 몸을 대신하고 있던 트리온 체를 복구하고, 그것을 원래의 몸 안에 되돌리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당연 이 작업에는 많은 양의 트리온이 필요했고, 트리온은 원래 사람의 신체에서 나오는 에너지원 중 하나, 이 큰 수술에 트리온을 제공하는 치카의 몸도 안전하다고는 보장할 수 없었다.
「저는 그래도 믿어요.」
진에게 그 말을 전하고 나서 오사무는 다시 한번 말했다. 그것은 결코 0.00000023%의 확률의 기적에 기대고 싶어 하는 도박자의 심정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동료를, 친구를 믿어온 사람의 심지였다.
치카가 유마를 살릴 수 있다고 믿듯이
그는 유마가 치카를 죽게 내버려 둘리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네. 진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피식 웃었다.
“저기, 진 상. 나는 어느 미래에서도 여길 안 떠난다는 거 사실이야?”
멍하게, 밤하늘 위에 그 자신이 언젠가 가 본 적 있는 네이버 후드를 바라보며 유가가 물었다.
“방금 말했잖아. 어떤 미래에도, 너는 여기 있었어.”
“치카가 없는 미래에도?”
살짝 커진 그의 눈이 유마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밤바람에 그의 검은 머리칼이 흩날려, 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음.. 안경 군이 너에게 얘기해줬어?”
“내가 알려달라고 했어.”
하기사, 그에겐 알 권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치카가 그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칠 각오를 했었다는 걸.
“음... 뭐. 그렇네. 치카 짱이 너에게 트리온을 제공하다가 결국 죽고... 안경 군이 자책하고... 너는 살아나서... 그런 회색 빛 미래에도 너는 계속 여기 남았어.”
“그런가.”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무미건조한 대답. 그는 지금 그 이뤄지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 걸까. 그것까지는 그는 알 수 없었다. 그가 보는 건 오직 몇 수 앞의 미래뿐.
“저기, 유마. 혹시 왜 그런지 알아?”
“응? 뭐가?”
“네가 남으려고 하는 이유.”
“뭐.. 오사무랑 치카랑 A급 1위를 노려야 하고, 다시 레플리카를 되찾으러 원정도 가야 해.. 그리고 아직 이겨보지 못한 선배들도 많고... 그러고 보니 진 상 그 후부터 나랑 랭크전 해본 적 없지 않아?”
“하하, 랭크전은 다음에 하자. 그리고? 그것뿐만은 아니잖아?”
“음....”
내가 여기에 남으려고 한 이유. 치카가 있는 미래든, 없는 미래든...
“지키기 위해서..”
그녀를. 그녀가 사랑한 이 세상을.
“그런가.”
입가에 호선을 그으며 진은 유마의 검은 머리칼을 마구 헤집었다. 그의 눈앞에, 또 하나의 미래가 확실히 반짝였다. 상처 받고 살아온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장면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지만, 미리 알려주는 건 반칙이겠지.
힘내라. 사랑하는 후배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