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바꾼 것 (유마치카) [월드 트리거]
네가 바꾼 것.
-원작 하고는 관계없는 2차 창작물입니다.
쿠가 유마✕아마토리치카
BY. 선풍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파인더를 통해 잡은 풍경은 악몽보다도 더한 현실이었다. 새하얘지는 머릿속과 거센 심장 고동 소리에도 덜덜 떨리는 손가락은 냉정하게 방아쇠에 걸려 있었다. 자꾸만 흐려지는 눈을 부릅뜨고 목표물 주변의 인물들을 훑어보았다.
쓰러져 있는 선배님들과 다리에 피가 철철 나면서도 일어서려는 오사무 군 그리고, 마치 망가진 로봇처럼 가슴에 금이 가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는 유마 군.
나만이 여기 숨어있다.
나만이, 스친 상처 하나 없이 여기에 있었다. 저기에 쓰러져 있는 분들이 지켜줬기 때문에...
나만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안 돼. 치카... 안 돼!
파인더를 통해 마주친 오사무군의 눈이 그리 소리치고 있었다.
콱!
‘목표물’이 오사무 군의 다리를 밟았다. 그는 지금 트리온 체가 풀린 상태였다. 오사무 군의 몸이 크게 요동쳤다. 그의 비명이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다시 움찔거렸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기진 못했다.
망설일 때가 아니라고, 지금 나만이 모두를 살릴 수 있다고, 머릿속은 그렇게 계속 소리쳤지만....
‘손이... 손을 움직일 수가 없어!’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꽉 다 물은 입에서 비린 쇠 맛이 났다. 눈을 깜박이니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유마 군이 파인더를 통해 똑바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여긴 수 십 미터 떨어진 건물의 창이었다.. 유마 군이 이쪽을 본다고 해서 그게 꼭 나를 보는 것이라고 단정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나를 보고 있었다. 너무도 많이 보았던, 전투 시에 그가 많이 짓던 얼굴,
무표정으로.
치카, 쏴.
그가 말했다. 아니, 난 그의 입모양만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난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내게 힘을 주었었다. 아, 그래 언제나.. 내가 망설일 때마다 그의 목소리는 내 용기였고, 희망이었다.
그리고
‘목표물’은 제거되었다..
“으.. 흐흑..”
내가 쏘았다. 이것으로 모두는 살았다. 모두 내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오.. 오빠..
난 그날 내 가장 소중했던 사람을 내 손으로 죽였다.
톡톡. 비가 낡은 기와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가 좋았다. 괴물은 이제 없지만 조금만 더 여기에 있다가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개굴개굴.”
“어? 너도 혼자니?”
어느새 옆자리에 작은 개구리가 와서 울고 있었다. 살짝 손을 대도 도망가지 않는다. 조금 쌀쌀했던 봄비가 조금 따뜻하게 느껴졌다.
“치카!”
“....! 오빠?”
우산을 쓴 오빠가 사당 앞의 돌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살며시 일어나니 그가 내게 가까이 다가와 우산을 씌워주었다.
“또 이런 곳에 혼자서... 이상한 것이 나오면 오빠한테 연락하랬잖아.”
“으으응- 오..오.. 오늘은 그냥 비를 피하려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니 오빠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다음부터는 그냥 나를 불러.”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릴 쓰다듬었다. 역시 오빠에게 내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 건가...
“돌아갈까?”
“응!”
내미는 손은 참 따뜻했다. 계속.. 이렇게만 지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내가 바란 건 그것뿐이었는데.
“... 카”
“치카!”
윙윙 울리는 목소리에 스르르 눈을 떴다.
“.... 오사무군?”
“다행이다! 이제야 눈을 떴구나.”
삑-삐빅-. 흐릿한 눈을 깜박이니 하얀 벽지들과 큰 기계들, 그리고 내 팔과 연결되어있는 링거액이 보였다. 고개를 돌리니 눈가가 빨개진 오사무 군이 내 양팔을 붙잡고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치카..”...치카..”
조심스레 날 껴안는 오사무군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응... 미안해 오사무 군.”.”
“왜.. 왜미안해해... 내가..내가.. 내가 더...”
그는 거기까지 말을 멈추었다.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기계의 전자음과 섞여 들였다. 나는 그가 진정될 때까지 가만히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위로는 그것뿐이었다. 그는 분명, 자신이 위로받을 가치도 못된다며 혼자 자책했겠지. 그는.... 항상 모든 것을 떠안으려는 사람이니까.
“오사무 군...?”
“응.. 모두 무사해.”
그가 몸을 일으켜 눈물을 닦고 날 보았다. 애써 웃으면서 말하려 하지만, 벌게진 눈가와 찌그러진 입가가 그의 지금 기분을 알려주고 있었다.
네 덕분이야.
네 덕분에 모두가 살았어, 치카. 고마워.
평소의 그러면 그런 말을 하며 활짝 웃었을 텐데.
“.... 유마 군은?”
“쿠가는...”
그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유마 군은? 오사무군, 유마 군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거야?”
“......”
“응? 오사무군!
급한 마음에 대답을 재촉하자 그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쿠가는 무사해.”
무겁고, 낮은 목소리...... 무슨 일이 있었구나. 그리고 아마 그 이유는...
“그렇... 구나.”
“치카...”
“다행이다. 모두 무사해서.”
“치카....”
미안해.
그의 목소리가 또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안해 치카. 내가..내가.. 내가 약한 탓에 네가.. 네가....”..네가....”
띄엄띄엄 눈물을 쏟아내며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나에게 용서를 빌었다. 나는 가만히 누워 그걸 지켜보는 수밖엔 없었다. 내가.. 내가 그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그가 나에게 더 이상 무엇을 빌어야 할까. 이건 여기 있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말로는 잘 나오지 않았다. 오사무 군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을 터인데. 오히려 그가 살아있다는 것이 무척 기쁜데. 그러나 그 기쁨보다 더 큰 구멍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네가.. 린지 씨를 쏘진 않았을 텐데...”
그의 흐느낌 속에서 잔인한 현실이 새어 나왔다..
그렇구나. 정말 우리 오빠가 내 동료들을 죽이려 했던 거구나.
내가 오빠를 죽인 거구나.
흐.. 흐으읍!...
그의 통곡소리가 너무도 생생해서, 눈물은 잘 나오지 않았다.
팔에 있던 링거 주사를 풀고, 병실에 있던 기계들이 하나, 둘 없어질 동안, 유마 군은 날 보러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병문안을 와주는 사람들에게 유마 군이 뭐하고 지내는지 물어봤지만,, 모두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돌리거나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단지 오사무 군만
‘그 녀석은... 준비가 아직 안된 거야.’
라고 굳은 표정으로 말해주곤 했다. 나도 그 이상은 물어보지 않았다. 더 알게 되는 것이... 무서웠다. 무엇을? 무엇을?이라 묻는다면 잘 대답할 수가 없다. 그냥... 지금은 나도 아직 그를 만날 준비가 안 된 것 같았다.
“하아-”
낯선 땅의 밤공기는 매우 차가웠다. 오사무 군은 이제 곧 다시 지구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그때까지 유마 군을 못 보는 걸까. 원정선은 작으니까 돌아갈 때는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될 텐데.
돌아가서... 이젠 어쩌면 좋지. 몸이 자꾸 떨리는 것은 차가운 밤공기 때문이만은 아니었다.
이제... 어떡하면...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은 이름 모를 별들로 반짝이고 있었다. 지구와 달리 이곳에서는 저 형형색색들로 반짝이는 것들이 다 네이버후드- 즉 이(異) 세계라고(異) 한다. 내게는 아름답고, 잔인한 밤하늘이었다.
“치카.”
어둠 속에서 들리는 낯익은 목소리에 흠칫 놀라 소리가 들려온 쪽을 돌아보았다. 곧이어 환한 달빛 아래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마군...”
“몸은 좀 어때?”
“.... 응. 난 괜찮아.”
“거짓말이네. 치카.”
“에..?”
놀라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쓰러지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본 그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차가운, 무표정.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유마 군이 살짝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았다.
“오사무에게 한 대 맞았어.”
“.....”
“왜 너에게 그런 일을 하게 했냐면서, 울면서 때리더라고.”
피식- 그가 차갑게 웃었다.
“다음날 바로 사과했지만. 정말, 오사무는 사람이 너무 좋다니까.”
그가 나를 향해 무언가를 던졌다. 얼떨결에 받은 그것은 권총형 트리거였다.
“유마.. 군?..?”
“하지만, 치카. 난 후회 안 해.”
내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그가 말을 이으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땐 그렇게 하는 게 정답이었어. 상대가 누구였던, 우리 모두가 살기 위해선 네가 그를 쏘는 것밖엔 없었지.”
“.......”
그가 내 바로 앞에 섰다. 살며시, 그가 권총 트리거를 들은 내 손을 잡았다.
“그러니, 치카.”
그리고 그걸 그대로 자신의 머리에 갖다 댔다.
“날 쏴.”
그가 희미하게 웃은 것 같았다. 눈을 한 번 깜박이니, 다시 그의 얼굴은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 무..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얼른 잡힌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그의 손이 더 힘을 주는 게 느껴졌다.
“놔... 이것 놔줘. 유마 군.”
“내가 원망스럽지?”
그가 내게 담담히 물었다. 왜 그가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
왜... 네가.. 나에게...
“아니야... 원망 같은 거... 하지 않아.”
말끝이 떨려왔다. 그와 눈을 마주칠 수가 없다.
“거짓말.”
그가 말한 ‘진실’에 놀라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보았다. 붉은 눈에 담긴 아무것도 못한 소녀는 떨고 있었다.
“아니야... ”
“아니, 난 알 수 있어.”
너도 알고 있잖아.
그렇게 말하며 그가 다른 손으로 내 뒷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차가운 무언가를 만진 것처럼 몸이 움찔거렸다.
“난 네 오빠를 네 손으로 죽이게 한 장본인이야.”
그가 총을 잡은 내 손을 움직여 내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었다.
“그러니 넌 날 죽일 이유가 있어. 안에 메테오라를 넣어뒀어. 네 트리온으로 메테오라를 맞으면 이 가짜 몸도 처참히 부서지겠지.”
“왜... 왜!”
너무도 담담하고 침착하게, 마치 전투 연계를 상의할 때처럼 자신을 죽이라고 하는 그를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기 싫다는 게 옳을 것이다.
“그때는 그것밖에 방법이 없었다고... 유마 군도 그렇게 말했잖아!”
마음속에 꼭꼭 묶어놨던 감정들이 조금씩 풀려나왔다. 애써 모른 척했던 것들까지 그는 꺼내려고 하고 있었다.
“오빠가 모두를 죽이려고 했어! 오사무 군과 유마 군을 죽이려고 했다고! 내... 소중한 사람들을... 우리 오빠가..”
풀린 감정들은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가 조심스레 다른 손으로 흐르는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총을 든 손은 힘을 준 그대로... 그는 똑바로 나를 보고 있었다.
“원망하고 있어! 그래도 그건 유마 군을 향한 게 아니야. 그때 방아쇠를 당긴... 오빠를 진작 에 막지 못한... 나를 향한 거야...”
왜, 오빠는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못한... 무의미한 나를.. 내가.. 얼마나!”
얼마나 원망했는지. 여기까지 오기 위해 노력한 나날들을, 나 이기로 오사무 군과 유마 군을 원정까지 데려온 것을, 오빠를 거기까지 내몬 내 자신을. 얼마나, 얼마나 원망하고, 증오했는지.
“유마 군이 그렇게 말하면... 안되잖아...”
난 네 목소리에 방아쇠를 당겼는데. 나도 모두를 지킬 수 있다고, 가르쳐준 너를 의지해서, 나를 지켜준다 말해주던 사람을 쏘았는데.
“왜... 왜...”
너를 죽이라니.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뜨거워지는 목이 아파왔다. 살랑- 밤바람이 우리의 머리카락을 흩트려놓았다. 이 고요함이, 나와 그 사이의 침묵이, 견딜 수 없이 아팠다.
“치카.”
담담한 목소리. 유마 군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네 덕분에 삶을 되찾았어.”
눈을 깜박여 그의 얼굴을 다시 제대로 보았다.
“아버지를 다시 살릴 수 없다면, 미덴, 일본으로 간 이유가 없었으니까. 내 잘못으로 난 이미 한 번 죽었잖아. 이런 몸으로 다른 곳을 돌아다녀도, 또 병기로 취급당하며 살아갔겠지. 아무런 의미 없이, 그렇게.
아, 일그러진 입가와 찌그러진 눈썹 그리고
“네가 보더에 너희 오빠를 찾기 위해 들어간다고 해서, 오사무가 같이 도와주지 않겠냐고 권유해서, 난 다시 살아갈 수 있었어.”
깊은... 깊은 슬픔이 담긴 눈빛
“넌 내 새로운 삶의 의미야. 그런데... ”
그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너는 내가.. 너에게 그를 쏘라고 한 이후로...”
난 순간 그가 울음을 터트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트리온 체로 되어있는 그의 몸은 피도, 눈물도 흘리지 못한다.
“너는 어째서 나로 인해 매 순간 죽어가...”
총을 잡은 그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는 두 팔로 날 감싸 안았다. 꽉, 숨이 막힐 정도로, 그의 말은 슬펐다.
“그러니, 치카, 날 죽여줘. 내게 삶을 준 네 손으로 날 끝내줘.”
귓가에 들리는 그의 목소린 여전히 담담했다. 그렇지만 그는 흐느끼고 있었다. 이렇게나 따뜻한 그의 품처럼, 확실히 난 그의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 총을 잡은 손을 다시 고쳐 쥐었다.
「트리거 임시 접속-」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때처럼, 덜덜 떨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강렬한 빛이 눈앞을 사로잡았다.
...........
“치카.”
소녀는 하늘을 향해 뻗었던 팔을 서서히 내렸다. 탁, 바닥에 권총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년이 쳐 놓은 실드 건너편의 소녀는 조용히 울고 있었다.
“할 수 없어... 나는 너를 죽일 수 없어. 유마 군.”
소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양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유마 군 덕분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갖게 됐어. 유마 군이 알려주었잖아. 모두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소녀는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소년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나도... 네 덕분에 삶을 되찾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한 하루하루 속에서, 너를 만나 용기를 얻었어. 네가 한 말에 처음으로 누군갈 지킬 수 있었어. 네 덕분에... 난 더 강해질 수 있었어.
“그러니 난 너를 죽일 수 없어. 유마 군! 난...난....”
“응.”
소년이 소녀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치카.”
상냥하고 슬픈 그의 품에서 소녀는 울음을 터트렸다.
계속... 계속...
파인더로 보았던 소녀의 오빠가 마지막으로 지었던 미소가 희미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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