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야제(聖夜祭)-(환상목록;카미인덱)[어마금]

-어마금 환상목록 (카미조 토우마×인덱스)+네세사리우스

-원작하고는 관련이 없는 2차 창작물입니다. 

-BY. 선풍기

*신약 리버스 스포가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소녀에게 있어 마지막 추억이 되리라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기쁨과 감사함의 환희로 성스러운 밤, 소녀는 평소보다 과하게 발랄했다. 이것 봐 카오리, 너무 아름다워! 스테일도 그렇게 생각하지? 소녀는 자신이 받은 자잘한 선물들이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불행에 대한 동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것 또한 그분의 뜻이길. 작은 소녀의 두 손을 함께 모아 잡은 그들은 그 무엇보다 신에 대한 믿음이 필요했다. 괜찮아. 소녀는 떨고 있는 두 사람의 손을 꽉 마주 잡으며 속삭였다. 수태고지의 명을 받들게 된 마리아를 대천사 가브리엘이 안심시키듯이, 소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침착했다. 불 꺼진 예배당 내부는 십자가 뒤쪽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새어 나오는 달빛으로 물들여 있었다. 아직 어렸던 스테일은, 그때 유일하게 은빛으로 빛나던 소녀의 미소를 보았고, 기억했으며, 앞으로 평생 그 얼굴을 잊지 못할 거라 감히 예상했다.

설사 소녀가 그때의 자신을 평생 기억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인덱스?”

 

 검은 삐죽 머리의 소년은 옆에서 참새처럼 쨍알거리며 감탄을 연달하던 사람이 보이지 않자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그녀를 찾았다. 오렌지에서 옅은 남색으로 물들여가는 학원도시의 하늘 아래는 화려한 일루미네이션과 은은한 캐롤 소리로 연말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인덱스? 혼잡한 인파 속에서 점차 불안해진 소년은 발걸음을 뒤로 돌려 눈으로 자신에게는 익숙했으나 이 도시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의 소녀를 쫒았다. 자신의 피부만큼이나 새하얀 바탕에 금빛으로 고급스런 자수를 놓은 수녀복을 입은 소녀, 인덱스는 어느 가게 유리창을 응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사라지지 말라고 했잖아! ‘우리 주님이 태어나신 성스러운 날에는 기필코 패밀리 레스토랑의 햄버그를 먹어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시스터?”

 

 인덱스는 계속 집중하고 있었는지 그의 안심이 담긴 잔소리마저 들은 기색이 없다는 듯 굴었다. 그제야 검은 머리의 소년은 시선을 그녀의 눈높이에 맞추어 소녀의 녹안이 응시하고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크리스마스라는 대성황을 맞아 있는 대로 물건을 팔아넘길 의지가 충만한 어느 장식품 가게의 쇼윈도였다. 아무리 학원도시의 기술이 바깥보다 대단한들, 이런 시기에는 어느 정도 아날로그의 감성이 담긴 제품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이 쇼윈도에는 빨강, 초록, 은색, 금색으로 장식된 리스와 트리, 악세사리 등이 가득했다. 그러나 항상 식비로만으로도 (주된 원인은 하얀 수녀의 식성이었다.) 가계 지출에 쩔쩔매고 있는 삐쭉 머리의 소년에게는 그것들이 그저 ‘예쁘고 비싼 쓰레기’로만 보일 뿐이었다.

 

“말해두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의 만찬으로만 하기로 합의했던 걸 잊지는 않았지?”

 

“응.”

 

 평소와 다르게 순순히 납득하는 인덱스에게 소년은 잠시 눈을 크게 뜨며 그녀의 옆얼굴을 보았다. 진눈깨비처럼 옅은 쓸쓸함과 그리움이 소녀의 눈동자에 떠오르자 소년은 순간 모든 감각이 아래로 쿵 떨어짐을 느꼈다. 도대체 무엇이 너를 그런 표정을 짓게 만드는 걸까. 초조함과 성급한 악의가 담긴 소년의 검은 눈동자가 다시 수녀의 녹안이 향하는 곳을 쫓는다. 시선은 큰 트리나 반짝이는 전구들 사이를 넘어 투명하게 빛나는 유리구와 그 안의 작은 눈이 내리는 풍경에서 멈췄다. 스노우 볼? 소년은 그것이 소녀가 원래 있던 세계에 어떻게 존재했는지를 가늠하며 아랫입술을 살짝 짓이기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인덱스를 바라보았다.

 

“저게 갖고 싶은 거야?”

 

“...아니.”

 

 그럼? 소년은 그렇게 묻는 대신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처연한 무표정의 수녀의 옆얼굴을 번갈아 응시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잠시 소년에게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쯤, 소녀가 작은 입술을 벌렸다.

 

“그냥,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들어서...”

 

 소년은 숨을 삼켜냈다. 달의 차가운 호수를 멋모르고 삼켜버린 듯 소년은 가슴이 먹먹해져 오는 걸 느꼈다. 오로지 그의 심장만이 이곳의 중력과는 다르게 무겁게 가라앉았다.

 

“흐음...”

 

애써 태연한 척, 그는 굽혔던 허리를 피곤 교복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운, 느낌이라는 건 누구와의 추억일까. 그 언젠가 그녀를 구원해주었던 또 하나의 자신이었을까? 아니면 그녀 자신도 이젠 영영 떠올릴 수 없는 추억의 잔재였을까. 소년은 자신이 지금 자신이 모르는 인덱스의 과거에 질투하고 있는지, 인덱스가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지 못함에 슬퍼하고 있는지 몰라 헷갈렸다.

 

“그럼, 저걸 사는 대신 레스토랑은 건너뛸까요?”

 

소년은 자신의 그런 복잡한 심정을 결국 인덱스와 자신과의 새로운 장면으로 해결하려는 스스로에게 미약한 구토를 느꼈다. 이건 결국 어린애의 투정과 같은 투기라는 걸 그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소년은 소녀의 과거만 관련되면 이토록 추악한 자신을 드러냈다. 인덱스가 자신을 따라 학원도시에 남겠다고 말해주었음에도, 그는 자신이, 혹은 그녀가 잊어버리고 만 기억들보다 지금의 그와 그녀가 함께하는 ‘현재’가 소녀에게 더 가치가 있길 바랐다. 자신은 늘 그랬으니까. ‘그럴 순 없어.’ 그럴 때마다 소년의 어른인 부분은 항상 그렇게 소년을 타일렀다.

 

“으으응-”

 

인덱스는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소년을 마주 보았다. 소년은 갑자기 소녀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자 흠칫거리며 뺨을 붉혔다.

 

“토우마랑 같이 밥 먹는 게 더 행복할지도!”

 

 환하게 웃는 소녀의 얼굴이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소년은 티 없이 맑은 유리창과 같은 소녀의 마음에 자신을 비춰보며 생각했다. 아, 이 얼마나 이기적인, 감사인가.

 

 

 

 

 인덱스는 이날을 평생 기억하고 싶다고 느꼈으나 그것을 말로 내뱉지 않았다. 말이 되는 순간 그 소망이 공기 중으로 흩어져 흐릿하게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덱스는, 네세사리우스의 ‘금서목록’인 그녀는 또한 자신의 소명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오늘이 그녀 개인에게 있어 소중한 과거가 될지라도, 그보다 더 소중한 모두를 위해서 이 일을 잊어야 한다는 것을. 그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늘뿐만 아니라 지난 1년간의 소중했던 날들을 모두 지워야 한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랬기에, 더욱 인덱스는 오늘을 간직하고 싶었다. 혹시나, 만의 하나라도, 이 성야(聖夜)에 작은 기적이 일어난다면...

 

“인덱스는 무엇을 빌었어?”

 

카오리 역시 울었구나. 흔들리는 촛불에 그녀의 눈가가 반짝이는 걸 인덱스는 분명히 보았으나 보지 못한 척 생긋 웃었다. 자신의 다른 한 손을 맞잡고 있는 스테일의 손아귀가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음... 아마... 둘과 같은 것을, 빌었을지도...”

 

 인덱스는 그 말을 할 때 자신의 눈가도 칸자키 카오리처럼 젖어드는 걸 느꼈다. 평생 이 손을 놓지 않겠노라고 스테일 마그누스가 약속했던 것 또한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은 1만 3천 권의 마도서가 아니라, 셋이서 함께 먹었던 케이크의 달콤함과, 겨울 하늘 아래 같이 산책하며 맞이했던 작은 눈송이들의 움직임과, 함께 배게 밑에서 읊조렸던 기도문이라는 것을, 인덱스는 알고 있다. 지난 1년간, 자신의 안에 스며들었던 것은 남들을 괴롭게 만드는 마술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했던 마법 같은 나날이었다고, 인덱스는 소리치고 싶었다. 누구라도 자신의 말을, 자신과 스테일, 카오리가 함께했던 날들에 대해서 듣는다면, 시간의 결을 하나, 하나 손끝으로 세어가는 것에 대한 기쁨을, 그리고 그것을 모두 지워버려야 하는 처참함에 대해 이해하리라.

 

 그러나 설사 신이 그것을 이해한다 하여도, ‘금서목록’이 가진 의무가 결코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기에.

 

“카오리... 스테일...”

 

소녀는 가슴 깊은 곳에서 빠르게 녹아드는 감정을 애써 삼켜내고 머리로, 그와 그녀와 함께 쌓아 올렸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웃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언제나, 신의 축복이 둘과 함께하기를...”

 

나도 제법 수녀 같을 지도.

 

소녀는 ‘내가 없는 내년에도 쭉...’이란 말 대신 그렇게 말했다.

 

 

“무슨 이렇게 작은 장식품 하나가 왜 그렇게 비싼 거야?”

 

 언제나 불행 속에 사는 소년, 카미조 토우마는 손바닥만 상자를 들고는 투덜거리며 밤의 학원도시를 걷고 있었다. 단속이 있을 때를 대비해서 일부러 인덱스가 씻고 있을 때를 틈타 사복으로 얼른 갈아입고 나왔는데, 정작 거리에는 이상할 정도로 사람도, 정찰용 로봇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들고 있는 상자 안의 물건은 확실히 값은 꽤 나가는 터라, 다음 달이 오기 전까지 레벨 0의 소년은 또 쫄쫄 굶다 싶이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선택을 딱히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태껏 그가 해왔던 모든 ‘구원’처럼, 이번 일 역시-

 

“인덱스... 일찍 자고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의 작은 소녀를 위한 일이었으므로.

 

 그렇지만 이번에는 절망에 가까웠던 그때하고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인덱스는 평소와 다름없이 패밀리 레스토랑의 거의 모든 음식을 주문해서 거의 음식물들을 흡수하듯이 빨아들였고, 집으로 오는 길 내내 그의 옆에서 조잘대며 크리스마스의 기원이라던가, 산타클로스의 원래 모습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쉴 새 없이 설명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카미조 토우마는 알 수 있었다. ‘오늘의 인덱스는 평소보다 더 힘내려고 하고 있구나.’ 라는 걸.

 

“그런 표정 봐버렸으니 말이야...”

 

 겨울의 밤보다 까만 머리칼을 긁적거리며 소년은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이, 그는 하얀 수녀에게 약했다. 기억을 잃어버렸던 자신의 앞에서 쭉, 눈물을 꾹 참고 웃어 주었던 그녀에게, 카미조 토우마는 한껏 물러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추운 겨울날 얼어 있던 땅이 서서히 녹아 싹이 트듯이, 그렇게.

 

‘이렇게 비싼데도 딱 하나밖에 안 남았었다니... 오늘만큼은 내 불행도 넘어가 주겠다는 건가.’

 

카미조는 피식 웃으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애써 산타를 자처했지만 자신은 스스로의 생각보다도 더 빨리 이 ‘선물’을 인덱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뭐, 통금을 들킬 걱정도 있고.’ 그렇게 덧붙이기엔 거리에 사람이 이상할 정도로 없었지만. 소년에게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잠깐. 사람들이 없다고?

그제야 카미조 토우마는 자신의 몸이 기억하는 이 상황을 되돌아보았다.

 

“늦었군. 카미조 토우마.”

 

아니나 다를까.

 

 짐승이 으르렁거리듯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빨간 머리의 험악한 인상을 지닌 신부와, 그 옆에 조용히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장검을 허리에 맨 긴 검은 생머리를 올려 묶은 여성이-그러나 그는 그녀의 직급이 무려 프리스티스라는 걸 알고 있다.- 자신의 기숙사 입구를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스테일... 칸자키.”

 

 카미조는 긴장한 채 예쁘게 리본까지 달아 포장한 인덱스의 선물을 자신의 주머니 깊은 곳에 푹 집어넣었다. 이것을 굳이 ‘옛날’의 자신이 인덱스를 구하기 전, 그녀의 파트너였던 그들에게 보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딱히 숨길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들 앞에서 인덱스를 위한 선물을 보여주기엔 (특히 대놓고 인덱스를 좋아한다는 게 티가 나는 불량 신부 앞에서는 더더욱)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신은 그들과 인덱스의 이별을 상상밖에 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카미조는 인덱스가 잊어야만 했던 스테일과 카오리에게 일말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소녀를 구원했다고 말하지만...

 

“여, 여어- 크리스마스에 신부님들이 여기까지 행차하셔도 되는 거야?”

 

제발 오늘만큼은 아무 일도 없기를 빌었는데! 영국 청도교의 네세사리우스 주요 인물들이 일본까지 온 이유가 자신의 오른손 때문일 거라 확신한 카미조 토우마는 다시 한 번 크리스마스에도 밤늦게까지 성실근무를 하는 자신의 불행을 죽도록 원망했다. 물론 영국 청도교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그는 크리스마스건 새해 첫날이건 기꺼이 따라갈 터였다. 하지만, 지금 사태가 아주 잠시라도, 인덱스를 위한 시간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할까? 오늘만큼은, 무슨 일이 일어났든지 간에 소년은 인덱스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저기, 음...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알겠는데, 이미 익숙한 레퍼토리라는 거 잘 알겠는데 말이지... 일단 카미조 씨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 수 없을까요? 아주! 조금이면 되니까! 산타가 잠시 아이 머리맡에 선물을 놔 줄 정도의 시간이면 되니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너.”

 

 허리를 냅다 숙이는 카미조는 머리를 붉게 물든 장신의 신부 앞에서 유난히 더 작아 보였다. 사태를 보다 못한 포니테일의 여성이 한숨을 푹 내다 쉬며 카미조와 신부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카미조 토우마, 지금 무엇을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저희는 오늘 네세사리우스의 일로 온 것이 아닙니다.”

 

“네네- 알겠어, 알겠습니다! 어쨌든 급한 일인거지? 도와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면 안 될까 나 인덱, 아니 집에 그... 여권이라던가? 하여튼 갑자기 비행기를 타도 아무렇지 않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올 테니까....”

 

“뭘 착각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엔 마술과는 관련 없는 부탁이다.”

 

 스테일이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며 툭 내뱉고 나서야 카미조는 얼떨떨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칸자키는 깊게 한숨을 들이쉬는 스테일의 어깨를 씁쓸하게 웃으며 툭툭 토닥였다. 그러곤, 카미조 앞에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이건 청도교하고도, 하물며 마술하고도 상관없는... 그저 인덱스의 파트너였던 사람으로서 드리는 부탁입니다.”

 

 카미조 토우마는 가만히, 칸자키의 손 위에 놓인 선물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새삼스런 생각이었고,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였고 그들은 자신보다 먼저 인덱스를 알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인덱스를 아끼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인덱스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런가. 아하하, 바보같이 그만 착각해 버렸네.”

 

 아아, 이건 벌이구나. 소년은 생각했다. 신의 아들이 태어난 날에, 함부로 자신만이 천사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생각한 걸까. 오늘은 저 하늘 위에 있을 누군가님의 생신이지, 자신의 생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카미조 토우마’는 인덱스를 구원했다.

인덱스는 ‘카미조 토우마’ 곁에 남기로 했다.

칸자키 카오리와 스테일 마그누스는 ‘카미조 토우마’가 인덱스를 구원한 것이라 말했다.

7월 20일. 자신은 모르던 여름방학의 시작.

 

“끝내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몰라”

 

우습게도, 소년은 그렇게 말했던 ‘카미조 토우마’의 심정을 이해한다.

 

“싸우고 있으면, 일단 지금의 장소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인덱스와의 ‘지금’을 유지시키고 싶었다. 누군가를 실컷 도와주고 다시 이 기숙사로 오면, 자신의 머리를 물어뜯고는 금세 울먹이는 얼굴로 걱정했다면서 자신의 오른손을 잡아줄 하얀 소녀와의 일상을, 이기적이게도...계속 바랬다.

 

“어떻게 할래?”

 

너무 자신다운 질문이라 생각했다. 그 녀석을 다시 흡수한 지금이라면 안다. ‘카미조 토우마’와 자신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덱스가 영국에 남기를 원한다면, 자신도 마술의 세계에 기꺼이 들어가리라. 하지만, 소녀는,

 

“돌아가자.”

 

인덱스는... 자신의 앞에서 웃어 주었다.

 

“우리들의 학원도시로”

 

자신을 묶어주는 것은, 이곳이라고 말해 주었다.

아마 그것은, ‘카미조 토우마’와 인덱스의 시작, 혹은 자신과 인덱스의 추억.

아. 그래서 자신은 그렇게 화가 났었나.

그래서 분수도 모르고, 괴물의 모습으로 뛰어든 거였나.

자신만이 인덱스를 소중하다고 생각하다니

소녀에게 선물을 줄 이가 자신밖에 없다고 상상하다니

 

이, 얼마나

 

“응. 잘 전달해 줄게.”

 

죄스러운 질투인지요. 신이시여.

 

 카미조 토우마는 고개를 숙인 채 소녀를 위한 선물을 받아들였다. 아. 그래서 스테일의 얼굴이 저런 것이었나, 하고 소년은 허무하게 정답을 맞춰본다. 누구라도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해줄 선물을 그 사람이 의지하는 인간에게 대신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다면 질투와 자기 혐오감에 뒤덮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스테일은 그에게 고개를 숙이러 왔다.

 

‘이런... 나보다 훨씬 어른이네.’

 

자조의 미소를 지어 올리며 카미조 토우마는 자신의 기숙사로 올라가려 했다.

 

“어이!”

 

 모든 걸 칸자키에게 맡겨만 놓은 채 쭉 인상만 팍 쓰고 있던 스테일이 그를 불러 세우기 전까지는, 그랬다. 카미조가 추위에 빨개진 코끝을 훌쩍거리며 뒤를 돌아보자 불량신부는 눈을 감았다 뜨더니 무표정으로 묻는다.

 

“그 녀석은... 인덱스는, 오늘 어떻게 보냈지?”

 

‘마치 인덱스가 행복하지 않았다면 너를 태워 죽이겠다는 말투로구만.’

 

피식. 카미조 토우마는 웃음을 흘린다. 아마 자신이 그의 입장이었어도 같은 것을 물었겠지.

 

“엉. 아주 그냥 패밀리 레스토랑의 전 메뉴를 다 맛보고 오셨지.”

“그 애 다운걸요.”

 

칸자키는,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금방이라도 눈이 녹아 봄비가 내릴 것 같은 미소. 이런 얼굴을 인덱스 앞에서는 자주 보여줬으려나, 소년은 그저, 상상밖에 할 수 없었지만.

 

 

 

 

 잠시 들어와서 차라도 한잔 하고 가라는 권유를 그들은 (정확힌 칸자키만이) 정중히 거부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인덱스의 잊힌 과거가 되는 것에 동의함으로서 자신들이 인덱스를 구원하지 못했다는 죄를 갚고 있는 것 같았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소년은 평생 답을 내리고 싶지 않을 질문을 하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고요한 방 안은 베란다에서 들어오는 학원도시의 야경의 빛으로 물들여 있었다. 소녀는, 역시 곤히 잠들어 있는 것일까. 카미조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맡을 찾으려는 찰나...

 

“토우마! 늦었잖아!”

“어, 어라? 인덱스 씨? 왜... 이 시간까지 자지 않고?”

 

당황하는 카미조를 본 인덱스의 녹안이 의아한 듯 깜빡거린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잖아?”

“뭡니까? 산타 씨라도 기다리는 겁니까, 아가씨?”

 

바로 그 ‘산타’의 역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카미조는 진땀을 흘리며 두 개의 선물을 넣어놓느라 불룩해진 주머니를 괜스레 만지작거렸다. 인덱스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그의 손을 붙잡고는 그들만의 작은 거실로 이끌었다. 원래 한 사람분의 크기로 만들어진 기숙사는 두 사람이 있으니 가득 찼다.

 

‘만약, 인덱스가 영국으로 돌아간다고 했어도... 나는 절대 이곳에 남는다고 하지 않았겠지.’

카미조 토우마에게 있어 이 1인용 기숙사는 이미 인덱스와 함께 사는 공간이었다. 이곳에 그녀가 없다면, 그의 내면까지 텅 비어질 것이기에. 소년에게 학원도시는 소중했다. 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 그는 정말 목숨을 바쳐 달렸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야 소년은 새로이, 어쩌면 새삼스럽게 다시 깨달았다.

아, 나는 우리가 함께 있을 장소가 필요했구나.

 

인덱스와 카미조 토우마가,

소녀와 소년이,

함께 있을 장소.

 

“여기에 앉는 게 좋을지도. 아, 무릎은 꼭 꿇어야 해!”

 

소녀가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이 소년의 귀에 속살거렸다.

 

“무릎을 꿇으라니... 어디서 이상한 플레이라도 배워온 건 아니겠지? 인덱스.”

 

소녀의 온기가 담긴 목소리에 저절로 심장 고동이 빨라지는 걸 들키기 싫었던 그가 이상한 농담을 하자 소녀는 이번엔 하나도 재미없다는 듯이 볼을 약간 부풀리곤 소년을 째려봤다. 미안- 미안. 곤혹스런 웃음을 지으며 사과하자 여느 때처럼, 항상 아무 말 없이 그가 이 기숙사를 나갔다가 돌아올 때처럼, 소녀는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인덱스, 너한테 이 기숙사는 얼마나 넓은 곳이었을까. 만약 너도 나와 같은 공간감을 느껴주고 있었다면... 아, 소년은 밤에 희미하게 빛나는 풍경에 눈이 멀 것만 같았다.

 

“오늘은 성스러운 밤이야, 토우마.”

“그런가? 일본에서는 연인들에게만 좋은 날인데 말이지.”

“사랑과 감사로 넘쳐흐르는 날이니까, 충분히 연인들의 날도 될 수 있을지도.”

“오늘은 자애로우시군요. 시스터.”

 

 카미조의 말에 인덱스는 고요히 미소를 지었다. 마치 눈의 결정처럼, 섬세하지만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녹아 없어질 것만 같아 불안해지는...

 

“인덱스...?”

“자, 토우마- 손을 모아.”

 

 소녀는 예시를 보여주듯이, 작은 두 손을 뻗어선 소년의 두 손을 붙잡고는 서로 모은다. 소녀의 작은 손이 자기보다 조금 크지만 아직은 앳된 소년의 손 위에 머무른다. 손이 녹아드는 감각 때문일까, 카미조는 자신의 심장이 한층 더 빨리 뛰고 있음을 느꼈다. 숨 쉬는 것마저 조심스러워질 정도로 인덱스와 카미조 토우마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하얀 수녀가 자책하는 검은 영웅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살포시 댄다.

 

“기도할거야.”

“... 누구를 위해서?”

 

 소녀는 맑은 녹안으로 그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한다. 이런 순간에도 결국 마음 안의 가시를 드러내고야 마는 자신이 있다. ‘를 위해서’ 라는 대답이라도 얻고 싶은 걸까. 그 ‘나’라는 것도, 결국 나인지 그인지 의심하고 말거면서. 수녀는 가만히 그를 바라본다. 말없이, 마치 그의 표정 너머에 있는 근심을 읽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눈빛으로.

다음 순간, 인덱스는 카미조 토우마를 껴안았다.

 

“모두를 위해...”

 

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토우마를 포함한, 모두를 위해... 기도하는 거야.”

 

소녀가 작게 속삭인다.

 

“괜찮아.”

 

괜찮아.

그런 거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 평소의 토우마가 돌아와 준다면 뭐든 좋아. 

 

돌아가자.

우리들의 학원도시로

 

어떻게... 나의 가장 깊고 뾰족한 곳까지 그렇게 감싸 안을 수 있는가.

 

“토우마가, 그랬으니까.”

 

소녀는 소년의 마음속의 질문을 알고 있다는 듯이 답했다. 소년은, 카미조 토우마는, 영웅은 자신이 구원했던 작고 하얀 수녀의 몸을 조심스럽게 껴안는다.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너무 세게 안아서 부서지지 않게, 소중히... 소중히...

 

“인덱스... 나는-”

“아무 말도 안 해도 돼. 토우마.”

 

당신의 죄는 이미 용서 받았으니까. 괜찮아.

 

겨울밤에도 녹아 없어질 것만 같은 소녀의 목소리가 소년의 귓가에서만 살짝, 모습을 비췄다가 사라진다. 둘의 모습을 축복하듯, 작은 기숙사 방의 베란다 창문에선 하얀 눈송이들이 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내리고 있었다.

 

마치, 환상 속 이야기처럼.